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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墓表

遺墟碑

善政碑

岩刻文

墓碣.墓表

 

(1) 金以健. 金得萬 墓表

 


소재지 : 상서면 산양리(사방거리 야산)

인물 : 金以健[1691(숙종17)~1743(영조 19)]의 本貫은 光山. 字는 昇允. 號는 圃生. 土宗의 아들이다. 資質이 特異하고 聰明하며 讀書를 열심히 하였다. 死後 工曹參議에 追贈 되었다. 金得萬[1709(숙종35)~1785(정조9)]은 김이건의 아들로 字는 玉先이며, 通政大夫에 追贈되었다.

현황 : 상서면 산양리 사방거리에서 군인아파트 뒤쪽 산 능선에 위치한다. 묘의 床石 오른쪽으로 묘표를 세웠는데 4명의 기록을 함께 적고 있다. 비석은 우측면 뒤쪽이 손상되었고, 碑身은 烏石으로, 비갓과 비석받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29cm, 폭 47cm, 두께 24cm이고, 4면에 모두 비문을 새겼는데. 前朝鮮總督府編修官 李能和가 짓고 썼으며, 건립연대는 1941년이다.

 

(2)金華澄墓表


소재지 : 상서면 산양리 (사방거리 야산)

인물 : 감화징[1729(영조 5)~1792(정조 16)]의 本貫은 光山. 初名은 華俊. 字는 致雲. 號는 松庵이며 得萬의 아들이다. 성품이 바르고, 才器가 卓越하였으며, 性理學외에 다른 業은 하지 않았다. 생활도 淸貧하여 士友들이 道德君子라 칭송하였다. 1777년에 龍衛副護軍에 올랐으며,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에 追贈되었다.

현황 : 상서면 산양리 사방거리 군인아파트 뒤쪽 야산 중턱에 위치한다. 묘소의 상석 오른쪽에 묘표를 세웠으며, 비석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비신은 오석으로 비갓과 비석받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119cm, 폭 40cm, 두께 17cm이다. 4면에 모두 비문을 새겼는데, 李能和가 짓고 썼으며, 건립연대는 1941년이다.

 

(3)金光礪墓碣

 


소재지: 상서면 산양리(사방거리 야산)

인물 : 김광려[1757(영조 33)~1818(순조 18)]의 本貫은 光山. 字는 炫政. 號는 溪隱이며, 華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힘써 많은 碩學과 交遊하였고,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면서 성리학을 토론하였으며, 효심이 깊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에 追贈되었다.

현황 : 상서면 산양리 사방거리 군인아파트 뒤쪽 야산에 위치한다. 묘소는 석물들이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으며, 오른쪽에 묘갈이 서있다. 상태는 아주 양호하며, 비신은 오석으로 비갓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25cm, 폭 48cm, 두께 19cm이며, 비문은 4면에 모두 새겼는데, 李能和가 짓고 썼으며, 건립연대는 194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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