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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의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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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의산천
화천문화원  화천의지명유래  화천군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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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은 고구려때는 생천군(牲川郡) 또는 야시매(也尸買)로, 통일신라시대때는 낭천(狼川)이라 불렸으며 고려 성종14년 역방도의 관할에 있다가 예종원년(1106)에 감무를 설치하여 성천군 (牲川郡)이라하여 양구(陽口)를 겸임하였다. 명종8년 춘주도가 설치됨에 따라 역방도를 폐하고 이의 관할이 되었다.

 

 

그 후 조선 태종13년 현감을 두었으며 그당시 낭천현의 관방(關防)을 보면 진산(鎭山)인성산(?山)에 성산성(山城)이 있고 남쪽으로는 용화산성(龍華山城)을 두었고, 역(驛)으로는 방천(方川),원천(原川),산양(山陽)역이 있어 강원도 驛路의 하나인 은계도(銀溪道)를 연결하였으며 院으로는 大利院이 있었다. 水路운송의 거점으로는 남진(南津)과 대리진(大利津)이 있어 소양강창(昭陽江倉)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후 인조23년(1644) 폐현하고 지금의 김화에있던 도호부관할로 되었고, 효종4년(1653)다시 복구, 영조23년(1748)에 철원진영이 개설되자 낭천현은 조선말까지 철원진영에 소속되오다가 고종32년(1895) 을미개혁때 행정구역개편으로 복현되었으며 고종광무6년(1902)에 화천(華川) 으로개칭되었고 융희(隆熙)2년(1908)에 양구군을 화천에 편입시겼다가 곧 분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60년)를 보면 낭천현은 현내면(縣內面)「大利里.新邑里.居次呑里.水洞里. 一上里.二下里」, 동면(東面)「觀佛里.末訖大里.芳川里」, 간척면(看尺面)「都宋洞里.於邑三里. 五音寺里.上看尺里」, 상서면(上西面)「吐丘里.九雲里.波浦來里.盧洞里.烽五里.山陽里.多項里. 馬峴里」, 남면(南面)「位羅里.居呑里.居禮里」, 하서면(下西面)「論味里.原川里.啓星里.鋤五芝里」 으로 6개면28개리를 관할하였고,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군내(郡內),상서(上西),하남(下南), 간척(看尺)의 4개면으로 개편하고, 1954년 10월21일에 법률 제350호에 의하여 춘천군의 사내면 (史內面)을 편입하고, 1975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4호(1979.4.7 공포)로 화천면이 화천읍으로 승격되어 지금 현재 화천군의 행정구역은 1읍 4면 2출장소로 이루어져 있다.

 

군경계를 보면, 동쪽은 양구군(陽口郡),남쪽은 춘천군(春川郡)과 경기도 가평군(加平郡),서쪽은 철원군(鐵原郡)과 경기도 포천군(抱川郡),북쪽은 철원군에 경계를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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